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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이슬람 사원 앞 10m 거리에 있었다. 인근에는 작은 공방, 손금 보는 가게, 수제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가게세는 대략 보증금 300에 월세 3,40 정도. 하지만 이곳 모꼬지는 한 주에 매출(순익이 아닌)이 50도 안될 때가 많다고 했다. 코로나도 큰 빚 없이 견뎌온 가게다. 하지만 이태원 사고로 손님은 오히려 코로나 때보다 더 줄었다고 했다. 물론 내가 가게를 찾은 날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러나 이태원을내려와 한남동에 들어오니 곳곳에 손님들이 보였다. 그러나 모꼬지에는 내가 있는 3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

 

모꼬지의 주인은 미국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다. 2010년 초, 가족 문제로 신당동 인근에서 해물 포차를 시작했다고 했다. 장사를 한지 3개월이 지나서야 동네 주민의 조언으로 그곳이 얼마나 험한 동네인지 겨우 알았다고 했다. 하루는 험악하게 생긴 청년이 목발을 짚고 와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중하게 대했고 그런 태도가 손님들을 불렀다고 했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알바하는 친구의 어머니에게 거금을 빌려주었고 결국 받지 못했다. 떠밀리듯 시작한 프랜차이즈는 야반도주한 가게 주인으로 인해 보증금 한 푼 못돌려받고 쫓겨 나왔다. 그는 이곳 모꼬지가 마지막 가게이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이곳 모꼬지 주인의 이름은 정은이다. 바를 정, 곧을 정이 아닌 고열할 정, 그리고 그 이름만큼이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이 서른이 되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너무 외롭게 자라 외로움이 외로움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어린 시절, 그는 그 외로움을 친구 삼아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녔다. 그러자 오히려 우울증이 잦아들었다 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혼자 찾는 손님들이 많다. 대개는 2,30대의 젊은이들이다. 주인은 그런 젊은이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이 가게를 지켜왔다. 주인도 손님도 치유되는 공간, 테이블 4개의 이 조그만 가게는 그렇게 소리없이 단골을 모으며 어려운 시절을 기어이 견뎌왔다.

 

 
 

하루는 젊은 커플 손님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도 행복해보이는 남자쪽과 달리 여자친구 쪽은 불만이 목끝에 찬 듯 불편해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주인은 전에 없는 일이지만 넌지시 '불편한 것은 억지로 참지 말라'는 조언을 전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남자 친구가 찾아왔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주인의 조언으로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후 주인은 항상 손님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고 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두기가 가게 운영의 핵심이라고 했다. 배를 채우는 식사가 목적인 밥집과 그 점이 가장 다르다고 했다.

 

주인은 가게 앞에 손금 가게가 들어섰을 때, 이웃 좋은게 뭔가 하는 마음으로 손금을 봐달라 했다고 한다. 손금 보는 사람이 거짓말처럼 자신의 과거와 성격을 맞추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두 배는 뛰어난 직감을 믿으라고 그가 말했다 한다. 돌이켜보니 자신의 직감을 믿지 않아 반대로 살아온 삶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손님에 대한, 인생에 대한 자신의 직감대로 산다고 했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면 대략 어떤 손님인지가 한눈에 그려진다고 했다. 문제는 오랜 노동으로 상한 몸이었다. 너무도 좋아하는 일이지만 몸이 힘들어 쉬는 날이 잦다고 했다. 좁은 주방 옆 벽에는 손님이 그려준 유화가 걸려 있었다. 주인이 기타를 치는 사진 같은 그림이었다.

 

하루는 오랜 단골이 회사 사람을 끌고 회식을 하러 왔다고 했다. 회식비 100만 원을 모두 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 매출은 70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단골이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주인은 언감생심 고마운 마음으로 행복했다고 했다. 문득 이 가게가 파는 건 술과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이 동네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네이버가 아닌 이웃에게 전화하는게 습관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정이 흐르는 이 가게를 지키는 것은 바로 주인과 손님의 교감이 만들어내는 치유의 힘이다. 때로는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정희네 같고, 때로는 아바타에 나오는 신성한 숲 속 거대한 한 그루 나무같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가게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중일까. 마케팅과 브랜딩의 그 수많은 이론도 이곳에 오면 힘을 잃는다. 가게 주인도 수많은 유튜버들의 희망 고문 같은 강연을 들었지만 이제 더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전혀 현실성 없는 조언에 지치고 실망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태원 골목 깊숙한 곳에 숨은 이 가게는 또 어떻게 재개발이 있을 2025년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들은 마케팅할 돈도, 브랜딩에 쏟을 열정도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도 힘에 겨운 요즘이다. 그 사이 야채가 듬뿍 들어간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두루치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슬람 사원 옆 계단을 지나 한참을 내려오니 한남동 골목에 닿았다. 거리는 조금 더 밝았고 손님은 조금 더 많았다. 하지만 힘들기는 매 한 가지 아닐까. 이곳은 신화 같은, 동화 같은 일 매출의 신화를 기대하지 않는다.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현란한 인맥도 말솜씨도 필요없는 곳이다. 그대신 술친구가 된 동생에게 선뜻 5000만원을 건네는 정이 살아 있는 곳이다. 나는 문득 이런 가게가 우리 동네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하루의 회포를 풀기 위해 한 잔 술을 마시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모꼬지에서 그런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에선 장사를 해선 안된다는 것을. 이곳에선 친구를 만들고 사귀고 견뎌야 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마케팅은, 브랜딩은 그런 의미임을 알았다.

 

 


 

15년차 브랜드 컨설턴트의 솔루션 제안

 

1. 정은님, 테이블마다 고민을 쓸 수 있는 쪽지함을 만들어보세요. 직접 대면하려면 피로도가 쌓일 수 있으니 자신의 고민을 써서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겁니다. 답은 별도의 상자에 담아두고요. 온라인을 활용한다면 쪽지에 쓰인 자신의 번호로 문자를 넣어주면 어떨까요?

 

2. 인터뷰 중에 진로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20년 경력자를 연결해주셨다고 하셨죠? 단골들의 직업을 물어보고 그에 맞는 전문가를 섭외해두었다가 연결해주면 어떨까요? 찐 단골에게만 해주는 특별 서비스. 저는 마케팅, 브랜드 분야의 조언자가 될 의향이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서 잘 조율하셔야겠지요?

 

3. 주인이 지쳐보이면 손님이 뭘 물어보기가 미안해질 수도 있어요. 전체적인 느낌을 자신있는 상담가 역할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물론 친언니, 누나같은 컨셉이라면 뭐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요^^ 중요한 건 정은님의 어떤 모습을 신뢰하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