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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회사를 나왔을 때 여러 가지 유혹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건 불안과 외로움이었다. 마침 나 같은 사람을 위한 협동조합이 있어서 당시로선 거금인 150만 원인가를 내고 가입했다. 팟캐스트에 출연했더니 나중엔 내게 녹음과 편집을 맡겼다. 강연자로 한 번인가를 나서 50만 원 정도를 받았다.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는데 협회 가입비를 회장이란 사람이 개인의 월급으로 가져가는 게 문제가 되어 협동조합은 공중 분해되었다. 그때 한 가지 크게 깨달은게 있다. 자기 앞가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와 협업한다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무려 800만 원 가까운 가입비를 내야 하는 협회의 설명회를 들었다. 2시간 반 넘는 설명회를 듣다 보니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다. 3명의 전문가가 무려 120명을 컨설팅하겠다고 한다. 웨비나를 통해 소개한 내용에는 전문가별 1시간씩 3시간의 대면, 비대면 컨설팅, 매달 세 차례의 단체 강의와 단체 컨설팅, 전문가 초청 강연, 전문 세미나, 사이트에 올려둔 수백 개의 강의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 설명을 듣는 순간 조금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하다못해 네이밍 작업 하나 하더라도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 4개월이 걸린다. 클라이언트가 만족하지 않으면 잔금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데 정작 전문가를 1:1로 대면하는 불과 3시간의 시간(물론 앞서 얘기한 프로그램들을 포함한다 하더라도)으로 참여자들이 만족할 수 있을까?

요즘 무자본 지식 비즈니스가 인기다. 월 천은 기본이고 때론 월 1억까지 이야기한다. 사실 제대로 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매출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이고 무자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퇴사 직후의 나처럼 간절함이 목 끝에 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한다. 자신과 비슷한, 하지만 먼저 성공한 사람들의 노하우가 절실한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당신도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3시간의 컨설팅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약속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만큼 책을 많이 팔지도 못했고 유명한 인플루언서도 아니다. 하지만 MBA 출신의 컨설턴트 서넛이 달려들어도 하나의 브랜드를 성공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까이서 본 사람이다. 그래서 이게 얼마나 무리한 약속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잘되었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서 성공한 1인 기업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무자본(그런데 800만 원은 내야 한다)으로 성공할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소식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장담컨대 120명 모두가 성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중 많은 사람은 그 큰돈을 쏟아붓고도 실패를 맛볼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게, 비즈니스란 게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1등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요는 정해져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고 보니 월 1억의 순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왜 합쳐봐야 10억이 안되는 매출이 최고치인 이런 사업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프로세스를 보면 1년을 꼬박 매달려야 하는 타이트한 비즈니스 모델인데 말이다.

나 역시 이번 달부터 격주로 브랜드 수업을 하려고 한다. 독립한 지 5년 차인 내가 오래된, 구체적인 브랜드 관련 도서들을 현업과 연결해 정리해보려 한다. 어차피 할 작업이라 다른 사람과 함께 공부하면 좋겠다 싶어 가볍게 시작했다. 그런데 무료이긴 하지만 100명이 훌쩍 넘는 분들이 신청해주었다. 이 수업은 1년간 진행되지만 25번의 수업은 모두 무료다. 다만 강의안과 녹화 영상, 오프 모임은 유료로 진행할 예정이다. 아마 이런 계획도 무료 수업이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면 그냥 계획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쓸모가 누군가의 필요에 닿는 과정이라면 감당해야 할 위험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15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나는 감히 나의 컨설팅을 통해 모두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그건 상식이고 양심에 거리끼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더욱 힘들어질 거라는 말들이 많다. 집값은 폭락하고, 스타트업은 투자가 끊기고, 가게와 기업들은 경영난을 호소한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니 쉽게 좋아지지도 않을 것이다. 아니 내가 첫 월급을 받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호시절은 없었다. 해마다 안 좋아지다가 급격히 안 좋아지는 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신 포도를 맛있다고 말하는 여우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포도가 얼마나 신지 먹어 보아서 안다. 하지만 함부로 누군가를 선동할 마음은 없다. 이미 그 협회엔 1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가입했기 때문이다. 관련 단톡방에선 조금이라도 의구심을 가진 글을 쓰면 바로 강퇴당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두가 자신의 선택을 할 뿐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그들 몫이다. 하지만 나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돈을 벌고 싶다. 최소한의 진정성을 가지고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고 싶다. 간절히 돈을 벌고 싶지만,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은 떳떳했으면 좋겠다. 부디 내가 그 협회를 오해한 것이길 간절히 바란다.

 

 



p.s. 관계자로부터 글을 내려주었으면 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고민 끝에 글은 그대로 두고 사실 관계만 수정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엔 변함이 없고, 이 글을 내리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분 얘기대로 1년 뒤에 성공해서 스스로를 증명하면 그것이 가장 스마트한 결론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정하자면 이 협회는 3시간의 컨설팅과 수백 개의 강의가 전부가 아닙니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었는지는 직접 보내오신 자료를 첨부토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하신 약속을 꼭 지켜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