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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브랜드

무신사 냄새와 어른 김장하

비버 박요철 2023. 1. 31. 09:47

최근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가 10~30대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말 못 할 고민에 빠졌다. 지난달 쿠팡플레이의 코미디쇼 SNL코리아에 등장한 “무신사 냄새 지리네”라는 대사는 무신사가 겪는 인기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이 대사엔 무신사 특유의 획일적 무채색 의류를 비꼬는 의도가 담겼다. 방송 이후 패션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자기 옷을 올리고 “무신사스럽지는 않나요”라고 물어보는 게시글이 부쩍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신사의 2021년 매출은 4667억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40.6% 불어난 수치다. 거래액은 스타일쉐어, 29CM 등 패션 플랫폼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총 2조3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공룡으로 성장하면서 오히려 놀림감이 되는 역설적 현상도 나타난다. 검은색 와이드 팬츠에 큼지막한 로고가 들어간 맨투맨 티셔츠는 10대부터 30대까지 남성들이 즐겨 입는 이른바 ‘무신사 스타일’이다. 검은색, 회색, 흰색 등 무채색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은 최근 들어 부쩍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22년 5월 말, 김장하 어른이 운영해온 진주 남성당 한약방이 문을 닫았다. 그의 나이 79세, 미성년자라 한 해를 기다려 19살에 받은 한약업자 자격증과 함께 해온 세월이 막을 내렸다. 그와 함께 지난 30년간 운영되어오던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34억원 가량의 기금을 경상 국립대에 기증했다. 방송을 위해 찾아간 피디의 눈에 김장하 어른 양복의 실오라기가 눈에 띄었다. 양복 안감이 다 헤어졌다. 오래된 3층 약방 건물에는 아직도 그 약방만큼이나 오래된 '금성' 에어컨이 달려있다. 이곳 한약방은 하도 손님이 많아서 약을 못지어 주변 다른 약방으로 갈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 800제까지도 약을 지어 새벽 3시까지 약을 만들어야 했던 곳, 한 달 순이익이 줄잡아 1억 안팍 정도를 헤아렸다. 그렇게 100억을 만들었다. 그 허투루 쓸 수 없는 돈으로 겨우 나이 마흔에 명신고등학교를 지었다. 많은 인재들이 그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른바 김장하 키즈들이다. 서울대 이준호 교수는 석사를 마칠 때까지 김장하 어른의 도움을 받았다. 일본 사이타마대학 경제학 교수로 있는 우종원씨 역시 어른의 도움을 받았다. 석 달에 한 번 어른을 찾아뵙고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면 들어주시고 생활비까지 넉넉하게 얹어 학자금을 주셨다고 한다.

 

우연히 두 개의 기사를 접한 후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만약 선택이 가능하다면 나는 무신사로 살고 싶을까, 김장하로 살고 싶을까. 어느 한쪽의 삶을 폄훼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 한쪽의 삶은 화려하고 극적이다. 다른 한 쪽의 삶은 존경스럽지만 끌리진 않는다. 다만 한쪽의 삶은그 유효기간이 짧고 다른 쪽의 삶은 여운이 길게 남는다. 만일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반응이 올까? 누가 뭐래도, 욕을 먹어도, 그 인기가 순간적이라 해도 무신사를 택하는 쪽이 훨씬 많지 않을까? 그러나 브랜드의 가치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투자 가치는 무신사보다 김장하 쪽이 될지도 모른다. 선택의 기준을 50년, 100년으로 잡으면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과연 100년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을까?

 

브랜드를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신뢰에 기반한 진정성이다. 소비자와 관계 맺기다. 보이지 않는 가치 창출이다. 하지만 이건 브랜드 교과서에나 나올 말들이다. 당장의 생존과 생계가 걸린 시장에서 이 말들은 정말 공허하게 들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어려운 순간에 자신들의 가치를 '선택'했다. 그들은 브랜드의 생명력을 연장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매출을 줄이고, 지킬 것과 버릴 것(Do & Don'ts)을 구분했다. 거대 기업의 매각 요구를 거절하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태된 브랜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브랜드가 되었다.

 

그렇다고 무신사의 길이 결코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가 수명을 다하면 리브랜딩을, 그도 아니면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 브랜드의 수명은 짧아도 새로운 런칭을 통해 회사의 수명을 늘려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본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라면 돈은 남아도 그들만의 브랜드는 남지 않을 것이다. 반면 김장하의 길은 춥고 배고프다. 바보스럽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들이 결국 '존경'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나는 어떤 브랜드로 남고 싶은가, 이 질문은 그 브랜드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마다 답을 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과연 어떤 브랜드로 남고 싶은가. 그 선택이 당신의 미래의 많은 것들을 바꾸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