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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한 번은 마케팅 팀에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나왔다. 유통 과정에서 흠집이 생긴 책들을 '스크래치북'으라는 이름으로 팔자는 제안이었다. 수십 권에 달하는 전집은 가격 역시 수십 만원에 달해 판매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같은 명분으로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니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하루 아침에 1억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문제는 마케팅 팀장이 브레이크를 놓아버렸다는 거였다. 그가 멀쩡한 재고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팔자고 했다. 나는 사장님을 앞에 두고 그와 격렬한 언쟁을 했다.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회사는 어려워졌고 큰 회사에서 매각되었지만 그 매출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사용자 수가 수백 만에 달하는 소개팅 앱 회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건은 소개팅 앱의 특성상 남성 이용자만 모이는 이른바 '남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발생했다. 남성이 쓴 글이 압도적으로 많아지자 여성들의 활동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이로 인해 남성들의 이탈현상까지 일어나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성비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200여 개의 허위 여성계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사내 단체 메신저를 통해 직원들에게 전파한 후 적극적인 '활동'을 지시했다. 심지어 남성 비율이 높아지면 밤 11시에도 연락이 와서는 글을 올리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내부 고발자로 인해 문제가 되자 해당 회사는 이로 인해 발생한 수익은 소액에 불과하며, 바로 해당 유저들에게 보상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아직도 큰 문제 없이 성업 중에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위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공교롭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 마케팅 팀장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생존, 즉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내린 결정인데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얄팍한 정의감으로 그런 분란을 일으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도 지울 수 없다. 아마 그후로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친분을 유지했기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소개팅 앱 회사만 해도 그렇다.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회사는 내부 고발자를 '애사심이 없다'며 몰아붙였다. 혼자만 지나치게 도덕적이라며 비난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회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사장이 아니라면 눈을 지긋이 감고 모르는 척 넘어가지 않았을까? (물론 여성 역할의 채팅을 해야 한다면 조금 더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최근에 3명의 전문가가 협회를 만들어 단 세 번의 설명회로 120명의 회원을 모으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 협회의 가입비는 무려 1,200만원 (얼리버드의 겨우 800만 원이었다)에 달했지만 사람들은 열광했다. 현업 컨설턴트로서는 이 3명이 120명, 즉 120개의 회사를 컨설팅한다는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름 분노에 차서 글을 올렸더니 그 다음날 그 협회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 꼭 성공시킨 후 1년 후에 찾아오겠다며 다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혼란스럽다. 단 3일간 약 10억의 매출을 올리는 그는 얼마나 대단한가. 회사에 속하지 않은, 절박한 이들을 위해 준비한 그들의 프로그램은 정말 놀라웠다. 단체 강의, 단체 컨설팅, 책 출간, 방송 출연, 수 백개에 달하는 동영상들... 사람들은 그들의 글과 약속, 강연, 설명회를 보고 직접 결정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내가 보기엔 지키기 힘든 약속처럼 보였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그들의 약속을 믿고 선택했다. 이건 그냥 정당한 거래이며 매출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지금도 혼란스럽다.

 

요즘 도처에서 이런 무자본 지식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한 달에 천 만원, 억을 버는 유튜버, 인플루언서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하나같이 '당신도 일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달콤한 유혹을 해온다. 그걸 보고 지갑을 여는 결정을 하는건 어차피 소비자들의 몫이다. 그들이 팔고자 하는 것이 제품이 아니다보니 가치 판단은 더욱 어렵다. 현란한 글솜씨와 말솜씨를 따라가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분명 뭔가가 있으니까 저렇게 확신에 차서 얘기하는 걸꺼야, 한 달에 몇 백 받아서 언제 집 사고 부자가 되겠어, 속는 셈 치고 몇 백 만원 투자해서 월 천을 번다면 남는 장사 아닐까? 학생, 취준생, 주부, 정년을 앞둔 중년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화장품만 해도 그렇게 광고가 엄청난데 근거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약속은 페북, 유튜브, 와디즈 등에 넘쳐난다. 그들이 쓴 책과 강연을 열심히 읽고 보아도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더 감히 넘볼 수 없는 영향력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엔 돈을 벌어간다.

 

나도 그들처럼 브랜드 수업을 시작했다. 브랜드에 관심을 있는 사람들을 모아 1년 간 스무 번의 무료 강연을 하기로 했다. 녹화본은 유료로 팔아 수익도 내볼 생각이다. 나아가 오프라인 강연도, 워크샵도 진행해볼 생각이다. 잘만 하면 평생회원제로 수익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앞서 말한 유튜버, 인플루언서들과 뭐가 다르지? 스스로 이런 자문을 곰곰히 하게 된다. 컨텐츠를 만들고, 강연을 하고, 사람을 모으고, 수익을 내는 방식은 똑같지 않은가. 이런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내가 하는 행동은 정당하고 그들의 활동이 부당하게 보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물론 이것도 내가 하는 프로그램들이 잘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다. 내 컨텐츠와 강의와 활동에 불만족한 사람들이 떠나가면 내가 하는 이 모든 질문도 무의미할지 모른다.

 

브랜딩이란 한 마디로 '가치 창출'의 활동이라고 배웠다. 여기서 가치란 제품과 서비스가 가진 쓸모 이상의 어떤 결핍을 채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일부 유튜버들은 분명 수많은 소시민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불안'을 파고 들었다. 그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부를 보장함으로써 그들 자신도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구를 채우는 모든 과정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말한 소개팅 앱은 사람들의 '외로움'이라는 욕구를 채워주었을 뿐이다. 단지 그 과정이 (적어도 내게는) 불친절하고 불투명했을 뿐이다. 내게는 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다만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들을 따라 하는 수많은 월천 프로그램들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금 내 주위를 안개가 둘러싼다. 과연 마케팅이란,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이게 정말 마케팅 맞나요? 브랜딩이 맞나요? 책에서 배운 이론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니 부딪히는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결국 회사는 수익을 내야 했다. 그런 회사들에게 비전이니 컨셉이니 가치니 운운하는게 얼마나 공허한 작업인지를 아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법만 아니라면, 혹은 불법이라도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수익을 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 사람들이 혹 있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리고 그런 결정을 어떤 식으로 스스로 납득하고 합리화할까. 과연 이런 질문들이 의미가 있긴 한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나는 여전히 일부 유튜버들의 '당신도 월 천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의구심을 가진다. 그들이 내놓은 독서법, 심리 분석, 성공의 방법론에 대해서 하고 싶은 질문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성공이 나같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를 확인해보고 싶다. 그러나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또 하나의 내가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고 배운대로 하면 수익을 내고 성공까진 아니어도 생존은 가능한 것일까? 너무 이상적인 생각에 빠져 정작 돈 버는 일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두개의 갈림길에 서서 허둥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알게 된다. 어느 쪽도 쉽지 않다는 것을. 정석대로 정직하게 회사와 사업을 키워가는 일은 어렵다. 그렇다고 SNS를 통해 사람을 모으고, 약속을 하고, 마치 종교처럼 팬덤을 만들어 수익을 내는 일이라고 어디 쉬울까. 나는 그냥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선택은 어차피 개인의 몫, 그래도 한 번쯤은 함께 고민해보길 원했다. 과연 마케팅이란, 브랜딩이란 무엇일까? 수익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경영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많은 것이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이런 질문을 꼭 한 번 던져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