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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여 년 직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3개월 간 번아웃으로 회사를 쉰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매일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이상문학상, 현대 문학상 같은 한국 문학상 수상작을 연도별로 촘촘히 읽었다. 일단 우리 글로 된 책을 섭렵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거기서 박민규, 김영하, 김애란 등의 작가를 만났다. 물론 세상에는 위대한 책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우리 말과 글이 가진 특유의 정서를 이해하는데는 역시 우리 나라 작가들만한 사람이 없다. 아무리 반찬이 맛이 있어도 밥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 물어온다. 뻔한 대답이지만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넘치도록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쓰고 싶다'라고 했을 때의 글은 기획서나 제안서 같은게 아닐 것이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은 더 구체적인 글쓰기의 '방법론'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간단한 가이드를 드리고 싶다. 이 구성은 롱블랙이라는 사이트에서 원고 요청을 받았을 때의 가이드를 재구성한 것이다. 일단 좋은 글, 즉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사건으로 시작하는게 좋다. 느낀 바를 쓰면 읽는 사람은 가르치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건은 독자들에게 함께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한다.

1. What : 사건 / 에피소드

- 어떤 기쁜 / 속상한 일이 있었어?
- 어떤 생각이 들었어?
- How :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는데?

여기까지 써놓고 보면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결과를 쓰면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그 다음에 쓰면 된다.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써보는 것이다. 그러면 읽는 사람들은 공감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무언가 충고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독자와 교감하는 것, 그것이 나는 아마추어들이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쓰기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2. Why : 결국 그 일은 어떻게 마무리 됐어? (본문)

-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어?
- 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걸로 끝난다면 글의 완성도가 떨어질 것이다. 일기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니 결자해지,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어떤 경험이든 사건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그 내용이 결국은 당신이 쓴 글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달하는 내용은 교훈으로 들리지 않는다. 독자는 이미 당신이 경험한 사건을 통해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생각이 같든 다르든 대화를 하고 싶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글을 통해 모르는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글쓰기의 유익이 아닐까?

3. so what : 넥스트 스텝

- 만약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어?

나는 이른바 글쓰기의 공식 같은 걸 믿지 않는다. 특히 페이스북에 쓰는 글의 대부분은 이런 공식을 떠올리며 쓰지 않는다. 하루 종일 쓰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일필휘지로 글을 쓴다. 그 때의 감정을 그대로 가감없이 전달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건 15년 이상 전문적인 글쓰기를 해온 결과다. 내게는 쓰고 싶은 글의 전문 분야가 정해져 있고, 그로 인해 쌓인 지식과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글을 시작해보라. 소설가도 첫 번째 소설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경험 자체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소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그 다음으로 특정 키워드에 대한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있다. 당신의 직업, 관심사, 특별한 경험 등이 그것이다. 이 때는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그 안에서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앞으로 그런 방법들에 대해서도 가볍게 가이드 되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측은지심이 생긴다.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돈도 안된다. 물론 책을 내면 강연과 같은 부가적인 수입이 생기지만 그것도 아주 소수에게만 허락된 열매일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보고 싶다면 앞으로 연재되는 글을 기다려 주시라. 막막한 글쓰기에 아주 작은 오아시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