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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른바 정통 코스를 밟은 브랜드 컨설턴트는 아니다. 대학에선 사회학을 전공했고, 나이 서른 중반이 되어 '유니타스브랜드'라는 전문지에서 비로소 브랜드란 단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책의 저자인 홍성태 교수님을 자주 뵈었다. 교수님답지 않게 소탈하고 유쾌한 면모는 이 책 '모비브'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어려운걸 쉽게 말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전문가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홍성태 교수님은 학계와 시장을 오갈 수 있는 몇 안되는 브릿지 같은 분이다. 언젠가 아직은 미완성인 원고를 보여주시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브랜딩'에  대해서 다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바로 브랜딩과 마케팅의 차이다. 마케팅은 한 마디로 '사게 하는' 것이다. 브랜딩이라는 '사게끔 하는 이유 혹은 동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브랜드를 마케팅의 상위 개념으로, 혹자는 그 반대로 이해하기도 한다. 홍 교수님은 마케팅을 '브랜드의 좋은 품질을 소비자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난 이 책이 굳이 브랜드와 마케팅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찌 되었든 홍성태 교수는 마케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좋은 품질은 오늘날 당연히 갖춰야 할 필요조건이다. 글로벌한 경쟁이 치열한 지금, 품질이 우수하지 않으면 예선조차 통과할 수 없다. 하지만 품질이 좋다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에 상응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가꿔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마케팅은 단순한 '제품(product)'의 경쟁이 아니라, '인식(perception)'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이 책은 조선 맥주가 '하이트'를 통해서 OB 맥주를 이기는 사례를 들어 '인식을 바꾸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한다. 어느 날 OB 맥주를 만드는 두산 계열사에서 낙동강에 페놀을 유출시키는 사고가 있었다. 조선맥주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150m 천연암반수'라는 인식으로 만년 2위의 자리를 털어내고 시장에서의 역전에 성공한다. 문제는 실제의 암반수가 광고에 나오는 이미지과는 상당히 달랐다는 것이다. 하이트를 만든 암반수는 위생의 문제로 인해 20일 이상 미지근한 온도로 숙성된 물이었다. 즉 우리가 아는 하이트는 광고가 만들어낸 인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마케팅, 그리고 브랜딩이 하는 역할인 셈이다.

 

(그렇다고 브랜딩이 사실을 위장하고 왜곡하고 포장하는 과정이라고 오해해서는안된다. 이 때의 광고는 제품의 차별화된 특징을 설명하기 위한 은유로 보아야 한다. 허위 과장 광고는 시장과 기관, 언론과 소비자의 검증을 통해 퇴출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 정태영 회장의 영상을 보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브랜드의 컨셉을 도출하라

그렇다면 이러한 브랜딩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컨셉을 도출하는 일이다. 이렇게 브랜드의 컨셉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컨셉션(conception)이라고 부른다. 컨셉션은 '잉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컨셉을 만든다는 것은 브랜드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현대백화점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생활 제안 기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재도약에 성공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백화점이란 업은 더이상 단순히 비싼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지금보다 향상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 기업'으로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는 컨셉의 실체다.

 

"하버드의 테오도르 래빗 교수는 '마케팅의 근시안적 관점'에서 벗어나라고 경고했다. 업의 개념을 기업의 관점에서만 규정하면 제품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점을 기업이 무엇을(what) 파느냐에만 둘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왜(why) 사느냐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위와 같은 도표를 활용해 업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곤 한다. 화장품을 파는 회사는 많다. 우리나라에만 무려 2만 개 이상의 화장품 브랜드가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딩 된 회사들은 다르게 말한다. 즉 화장품이 아닌 '그 무엇'을 팔고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 때의 빈 칸이 바로 컨셉이다. 디즈니는 한 때 TV의 등장이 몰고 온 영화 산업의 몰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업을 재정의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었다. 즉 그들은 일반적인 영화 산업이 아닌 '즐거움'을 주는 사업으로 그들이 하는 일을 재해석했다.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 것이다.

 

"(디즈니가 기존의 영화 산업이라는) 관점을 바꾸자 영화와 관련된 테마파크 공연, 영화를 소재로 한 놀이기구, 영화음악 판매, 디즈니 TV채널에서의 자료 활용, 캐릭터나 출판 비즈니스, 식품이나 음료수의 브랜드 사용 허가, 게임업체의 캐릭터 이용에 대한 로열티 등,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졌다."

 

(그렇다면 이 컨셉은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까? 별도의 오프라인 워크샵을 통해 이 과정을 설명하고 실제로 완성해보는 수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컨셉을 카피와 슬로건으로 응축하라

브랜드 컨셉을 도출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렇게 도출된 컨셉을 다시 응축할 수 있어야(condense)해야 한다. 머릿속의 '차가운 컨셉'을 응축하면, 마음속의 '따뜻한 메타포(metaphor, 은유적 표현)'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묘사(description) 보다 무언가를 암시(suggestion)할 때 더 쉽게 이해하고 감동한다. 이 책은 그 예로 애플의 슬로건을 이야기 한다. 즉 애플은 자신들의 남다른 혁신성을 'Think Different'란 슬로건으로 응축해냈다. 홍성태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애플의 슬로건은 언제나 'Think Different'입니다. 짧지만 번역하기 쉽지 않다. 동사 뒤에 부사가 오는 게 아니라 형용사가 오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해보십시오(Think differently)'라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아마 '다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Think (about being) different)'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제품 -> 의미 -> 컨셉(단순함,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 -> 응축 -> Think Different

 

포르쉐의 디자인 철학은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이다. 세대에 맞는 변신은 계속하되, 근본이 되는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은 바꾸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은 카피다. 늘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포르쉐다움'이라는 차별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슬로건에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두산의 '종가집'은 그러지 못했다. 이 회사는 된장, 고추장, 식혜 등의 다른 전통식품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김치의 이미지가 굳어져,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김치부문만을 대상에 넘기고 말았다.

 

(네이밍과 로고, 카피와 슬로건 등의 작업이 바로 이 과정에 해당한다. 컨셉을 도출한 후 이를 직관적으로 소비자들이 인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애플의 사과 로고와 에이스 침대의 '침대는 과학이다'라는 카피는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것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GE는(지금의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렸지만...) 어떠했을까? 그들은 텅스텐으로 된 필라멘트를 만들어 수명이 '오래 가는(durable)' 전구로 유명했다. 그리고 이 내구성이 강하다는 이미지가 그 후 출시된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가전제품들로 이어져 막강한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브랜딩이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인식을 바꿔가는 과정이다. 가전 제품은 어느 나라의 어느 회사도 (여건만 된다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GE가 쌓아온 오랜 역사와 '내구성'이라는 컨셉은 소비자들이 GE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오래 가는 가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런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것이 과거에는 TV와 신문 광고였다면 지금은 유튜브와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한 바이럴로 그 채널이 바뀌었을 뿐이다.

 

"'마케팅 1.0' 시대에는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키려 했다. '마케팅 2.0' 시대에는 감성을 움직여 행동을 유발하고자 했다. '마케팅 3.0' 시대에는 영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마케팅학계의 거장인 필림 코틀러 교수는 마케팅 과잉 시대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단순히 소비자의 감성에 다가가는 수준이 아니라 '영혼에까지 도달해야 한다(reach consummers' soul)고 주장한다."

 

옛날에는 제품의 품질이 중요했었다. 이때는 그야말로 무조건 많이 파는 것이 중요한 마케팅의 시대였다. 하지만 비슷한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그것만으로는 제품을 차별화하는게 불가능한 시대가 왔다. 이른바 브랜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브랜딩이란 사람들의 인식, 즉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다. 그것은 제품의 특장점과 스펙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리한 마케터들은 제품을 대신할 만한, 그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함축해서 표현할 '컨셉'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우리는 '이니스프리' 하면 제주를 먼저 떠올린다. 볼보 하면 '안전'을 떠올린다. '백세주' 하면 어이없게도 건강을 떠올린다. 이 책은 이렇게 1부의 마지막을 이렇게 얘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브랜드를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컨셉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브랜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요약한 편집본이다. 실제 수업에서는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최근의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실제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홍성태 저 /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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