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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운명의 조각칼이다, 이민호

비버 박요철 2019. 1. 20. 19:40

"대단하시네요. 3시간 동안 쉬지도 않으시고요."


기상청에서 '스몰스텝'을 강의했을 때였다.

열강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는데 공무원 한 분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알쏭달쏭한 이 말의 정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분명해졌다.

그 날 나는 혼자 말했던 것이다.

듣는 사람이 뭐라 하든 내 할 말만 했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강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었다.

글쓰기처럼 기승전결의 구성을 완전히 버렸다.

대신 아주 '구체적인' 스몰 스텝의 '경험'들을 초반에 배치했다.

매일의 산책,

산책길에 만난 길냥이,

딸과의 교환일기,

형편없는 솜씨의 그림 그리기...

그렇게 10여 분을 이야기하다보면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때면 안심이 된다.

사람들이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책으로 쓸 때는 전략을 바꿨다.

Why를 먼저 이야기했다.

서문에서 이토록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누군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방식은 지루하고 사족일 수 있다.

그 대신 내가 얼마나 평범한지를 이야기하고

나보다 더 대단한 당신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3년을 넘어 강의를 계속하는 지금도

이 원칙은 여전히, 꾸준히 지키며 강의를 하고,

또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은 말하기의 '스킬'을 말한다.

'세바시'와 '말하는대로'의 스피치 강사인 저자의 약력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목은 그 핀트에서 벗어나 있다.

말이 '운명'의 조각칼이라니...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다.

한 사람의 운명은 사람과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 성공과 실패가 갈리게 되지 않던가.

친구따라 강남을 가기도 하고

말 한 마디로 천냥빚을 갚기도 한다.

말은 '강사'에게만 필요한 스킬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애티튜드'이다.

만나면 힘이 나는 사람이 있다.

만나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대개 그 과정은 '말'을 통해 결정되곤 한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은 옳다.

한 사람의 말은 운명을 '조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오랜 강의를 통해 말하기의 스킬은 어느 정도 익힌 것 같다.

이 책이 말하는 많은 내용을 이미 따라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운명을 조각하는 칼은 참으로 무딘 사람임을 잘 안다.

와이프는 아이들과 친하다.

기타에 1도 관심이 없으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

여자 아이돌에 1도 관심이 없으면서 앨범을 함께 고른다.

왜 아이들이 엄마를 좋아할까 생각해보았는데

그 이유가 너무 많아 몇 개를 고르기 힘들었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들어준다는 사실을 1번이지 않을지.

오죽하면 딸의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와이프를 선물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까...

나는 1+1으로도 안받아갈 것 같은데...


꼭 강의를 해야 하는 강사 지망생이 아닐지라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일지 고민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책이다.

내가 누군가와 말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말해주고 마련이고

그 작은 말 한 마디가 쌓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은

단언컨대 과장이 아니다.

상대방을 혐오하는 논리가 유튜브에서 각광받는 시대에

이런 '착한 책'의 등장이 새삼 반가운 오늘이다.

진심이, 진정성이, 그런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새삼 믿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