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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참 쉬운 말이다. 하지만 노년에 만난 배우자를 먼저 떠나 보내는 C.S.루이스에게는 그 '사랑'이란 단어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건 그가 언어를 다루는 작가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가치'란 말도 그렇다. 용기, 정의, 감사... 그 어느 것 하나도 쉬이 다룰 수 없는 말임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것이 생명이든, 돈이든, 명예이든 말이다.

'더 포스트' 역시 이런 '가치'를 다룬 영화다.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영화다. 요즘처럼 '기레기'란 말이 공감가는 때가 다시 없었고, 시대에 밀려 종이 신문을 보는 사람이 더더욱 없는 시절에 이런 영화라니... 다소 아이러니한 기분으로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차에 다시 보았다. 영화에 관한 한은 촉이 있는 와이프의 추천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왜 영화가 끝날 때쯤 해서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일까. 좀 더 공부를 해서 언론고시라도 쳐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용서가 되었을까. 딱히 깊이 고민해본 주제도 아닌데 그들은 내 공감을 요만큼이나 끌어내었고, 그 이유의 8할은 아마 실화에 기반한 스토리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부러웠다. 아무리 미국을 욕해도 부러운건 부러운 것이다.

언젠가 세월호에 관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언젠가 태블릿 입수에 관한 영화가 나올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감히 예언해 본다. 바로 그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잃을 것과 얻을 것에 대한 법무팀의 리포트를 받고 있었을까. 언론의 자유라는 거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우연에 의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기사화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용기가 그것을 가능케 했을 것임은 감히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더 포스트'지는 언론의 자유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좀 더 정확히는 '용기'에 관한 영화다. 그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어딘가 깊숙히 묻혀있을 스토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향해 진보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온갖 폭로와 음모론이 잇따른 요즘, 과연 그들 중 몇이나 그런 소중한 가치에 기반해 그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정권이 바뀌어도, 세대가 바뀌어도, 시대가 바뀌어도 감동을 줄만한 그런 폭로와 고백들인지 심히 의심스러운 이때, 나는 어떤 가치를 감히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 포스트'지의 폭로는 결국 미국을 월남전이라는 기나긴 소모적인 비극에서 젊은이들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언론의 자유는 알 권리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가 대통령의 통치권 위에 존재한다는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원칙과 헌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영화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요즘처럼 가깝게 느껴진 적은 없는 것 같아 영화의 감흥이 가시기 전에 몇 자 남겨보고자 한다. 사리사욕을 걷어낸 정치의 민낯을 가끔은 뚫어져라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 용기를 가진 기자가 이 시대에도 허락될지 지켜볼 수 있을까. 그런 용기가 존경받고 추앙받는 시대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굳이 다시 촛불을 들고 다시 나서지 않아도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