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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에 처음으로 다이어트란걸 한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배가 고프다. 식사 때마다 내가 먹는 밥은 왜 그렇게도 빨리 줄어드는지.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연말의 건강검진 결과를 기억해야 한다. 중성지방이 평균치를 훨씬 뛰어넘었다니. 어째 뱃살이 두둑하니 잡힐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매일 바라보는 내 얼굴에서 변화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독한 마음을 갖고 식사를 조절 중이다. 일단 탄수화물을 줄이고 식사량도 줄인다. 다이어트 선배인 와이프의 도움을 받아 간간히 바나나와 삶은 계란을 먹는 중이다. 와이프의 조언대로라면 노른자까지 포기해야 한다지만.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그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지 않은가. 간만의 여유로운 주말, 아이들이 시차를 두고 라면을 끓여달랜다. 생선을 눈 앞에 둔 고양이의 심정이 이랬을까? 간밤에 황태포를 죄다 뜯어놓은 우리 집 냥이들을 그렇게 함부로 몰아세우지 말아야 했다. 그 두 번의 고비를 참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주말 오후의 심심함과 나른함을 달래기엔 라면만한 것도 없는데... 그래도 참아야 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끓인 라면은 맛있었을까? 아이들의 후루룩 거리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아른거린다.



그 와중에 '고독한 미식가'를 보았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배고픔이 두 배가 됐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는데, 주인공의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엔 주인공이 배고픔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편집도 다르게 한다. 오래된 친구가 여장을 하고 나타났을 때, 사랑하던 여자친구로부터 결혼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어렵게 따놓은 계약들이 하나 둘씩 취소되고 있을 때, 그는 문득 허기를 느낀다. 그리고 조용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 순간 내게 필요한 음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낯선 거리를 찾아 헤맨다. 갑작스런 육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그리고 그 선택에 특별한 스토리 같은 건 없다. 그저 그 순간의 배고픔을 달랠만한 평범한 음식들 뿐이다.


'푸드 스트리트 파이터'를 열광하며 보았었다. 달변가 백종원 선생의 입담에서 나오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고독한 미식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처럼 혼자 일하는 평범한 중년이, 아주 평범한 상황이 빚어내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평범한 음식을 찾아다닌다. 오뎅, 생선, 돈까스... 어디서나 만날법한 음식을 그저 묵묵히 '맛있다'며 먹을 뿐이다. 조리법을 묻는 법도 없고 특별한 연출도 없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어느 순간 특별한 공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누군가에겐 한 잔의 술이, 누군가에겐 한 대의 담배가, 누군가에겐 한 끼의 따뜻한 식사가 갑자기 고파는 그 순간. 이제야 알겠다. 그건 단순한 육신의 허기가 아니다. 영혼의 배고픔이다. (드라마의 나레이션대로) 힐링이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한 끼의 식사를 맛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먹느냐가 비로소 어우러졌을 때 우리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중년의 남자가 느끼는 포만감과 평화로움에 중독되어버리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도 없는 법. 내 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다이어트를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든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살을 빼는 건 결과일 뿐이다. 허기를 느끼고 포만감을 느끼는 그 단순한 인생의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겠다. 바나나를 즐겨야겠다. 라면을 참아야겠다. 고독한 미식가도 가끔만 만나야겠다. 오늘의 한 끼에 충실해야겠다. 돈까스와 홍합탕을 기꺼운 마음으로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