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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브라우저 때문이 아니었다. 이 브라우저를 통해 제공하는 확장 프로그램 '모멘텀' 때문이었다. 이 작은 프로그램은 브라우저의 새 창을 띄울 때마다 전 세계의 아름다운 자연의 장관을 보여주곤 했다. 부가 기능이 적지 않지만 거의 쓰지 않았다. 오직 브라우저를 띄울 때의 그 작은 사치의 경험 때문에 어떤 유혹에도 브라우저를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네이버의 웨일을 쓴다. 새로운 '루틴'이 생겼기 때문이다. 필사를 즐기는 내게 광고창을 모두 지워버리고 오직 텍스트만 보여주는 기능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이 기능을 제공하던 확장 프로그램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모멘텀'의 기능을 완벽히 자기화?한 네이버에서 새로운 브라우저 '웨일'을 내놓았다. 빵빵한 부가 기능에는 그닥 끌리지 않았던 내가, 자체적으로 '읽기' 기능을 제공하는 웨일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 기능에 만족하고 있다. 무려 10여 년만에 내게 생긴 변화였다.


매일 아침 전 세계의 장관을 만난다. 브라우저가 아닌 '모멘텀'으로.



또 한 가지 변화는 화장실에서 찾아왔다. 먹은 것의 1할이 머리로 뻗치는지, 의도치 않게? 평소에도 야한 생각을 많이 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머리도 수염도 빨리 자라는 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의심의 여지 없이 질레트 면도날을 사용해왔다. 기능에는 만족하고 있으나 문제는 가격이다. 4개들이 팩 하나가 2만원을 넘어서니 부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하나를 오래 쓰는 습관이 생겨났고, 제때 사려면 잠깐 숨을 참는 결단이 필요했다. 이 가격도 매달 쌓이면 적지 않은 지출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사가 어느 날 내 눈앞에 등장했다. 다름아닌 면도날 섭스크립션 브랜드인 '와이즐리'의 등장이다. 여기서 '섭스크립션Subsription'이란 말 그대로 '정기구독'의 개념이다. 매달 8,900원을 내면 면도날을 배달해준다. 면도날은 쌍둥이칼의 원산지로 유명한 독일의 어느 도시라고 한다. 시험 삼아 써보다가 나도 정기구독을 했다. 나의 일상에 또 한 번의 작은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클라우드와 서브스크립션 브랜드들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고 있다. 브랜드 선택의 기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를 좀 더 싸게 구입하던 패턴에서, 일상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쪽으로 추의 무게가 기울고 있는 것이다. 면도날의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품질'은 어느 순간 평준화되어 차별점을 찾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설혹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차이는 미세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에 '대안'이 되는 '문제해결'을 해줄 수 있느냐다. 제 때 면도날을 교환해준다는 것은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일이 좀 바쁘다 싶으면 일주일이 순삭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 매번 면도기를 들 때마다 '아차'하면서 몇 주가 훅하고 지나가 버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품질 보다는 타이밍이다. 그래서 매달 4개씩의 면도날을 제때 제때 배달해주는 '와이즐리'가 '현명'해보이는 것이다.


독일 기술의 면도날이라고 해서... 넘어갔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와이즐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미국의 유명한 섭스크립션 브랜드로부터 카피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섭스크립션' 트렌드이다. 매달 결제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갈아탄 '일상의 브랜드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독서를 즐기지만 서점 가기 힘든 사람을 위해 나온 '리디 셀렉트'도 그 중 하나다. 이 서비스는 한달 6,500원의 가격으로 일정 기간 동안 정해진 책들을 마음껏 읽어볼 수 있다. 종이 책이 아닌 전자책이니 사용 방법 또한 간단하다. 처음엔 몇 권의 제한이 있더니 요즘은 경쟁으로 인해 그마저도 풀려 버렸다. 매일 아침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는 나 같은 사람의 일상을 '간파'한 것이다. 나는 이런 변화가 전 산업에 걸쳐 일반화되리라 생각한다. 심지어 옷 조차도 나름의 스타일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배달하는 서비스가 이웃나라 미국에서는 완전히 흥행하는 중이다. 아직 국내의 비슷한 서비스들은 자리를 잡지 못한 듯 보이지만. 그건 기술과 취향의 문제이지 이 도도한 트렌드의 변화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책 쇼핑을 한다. 리디북스가 만든 리디 셀렉트로.



'일상'을 점령해야 한다. 일상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면 또 하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사업이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일 것이다. 다만 어려운 것은 그 다음이 아닐까? 이 모든 아이디어의 전제는 최고와 견주어도 그리 밀리지 않는 '제품력' 그 자체에 있을 테니까. 와이즐리의 면도날이 'made in Germany'가 아니었다 해도 나는 '와이즐리'를 선택했을까? 아마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 조차도 독일에 대한 환상을 미끼로 한 마케팅 전략일지 모르겠으나. 아직은 그들의 품질에 크게 불만이 없다. 면도 비용의 절반 이상을 한 번에 줄여주었을 뿐 아니라, 제때 면도날을 교환해야 하는 고민을 완전히 해결해주었으니...


일상을 점령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스마트하게. 와이즐리처럼 현명하게. 리디 셀렉트처럼 과감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