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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오다 깜짝 놀랐다.

늘 건널목 맞은 편 자리를 지키던 작은 빵집에

전에는 보지 못하던 긴 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식빵 잘 만드는 '밀도' 앞이다.


실은 이 빵집이 생긴 지는 제법 오래...

아니 몇 달 되었다.

빵의 탄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감각적인 네이밍과

한 눈에 어떤 빵집인지를 드러내는 센스 넘치는 로고에 탄복하고도

그 집 빵 맛을 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빵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 날 불현듯 챙겨간 이 집 식빵을

어릴 적 빵집 딸이었던 '빵순이' 와이프가 뒤늦게 맛을 보게 되었다.

이틀이 지나 무심코 먹은 빵이 괜찮았단다.

놀러온 분당의 아줌마들까지 고개를 끄덕인 정도?

명불허전인 것인가?

일본에서 빵을 공부하고 돌아와

분당 아래 미금인가 죽전인가에 큰 빵집을 낸 가게의 분점이라더니.


그리고 또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이 집은 그 불과 몇 달 만에 서울숲역 근처의 아이콘으로

내 눈 앞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적당한 맛과 적당한 촉촉함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치 못한 나는

두 사람이 들어서면 주문할 공간도 없는 협소함,

단일 품목만을(실은 몇 가지 메뉴가 더 있지만) 취급하는 전문가적 포스,

지금이 서울숲을 찾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며,

그 길의 가장 번화한 건널목 맞은 편을 자리잡고 있다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해본다.


매일 나오는 이 집 식빵의 양은 제한적이어서 항상 예약인데다

빵을 한 번 사려면 앞에 한 사람만 있어도 줄을 서야 하며

그 줄은 고스란히 외부로 드러나게 되어 있고

두 배의 가격을 감수할만한 적당한 식빵으로서의 콸러티에다

물과 소금과 밀가루로만 빵을 만든다는 오너의 스토리도 숨어 있으니

어쩌면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빵만큼이나 단순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차피 모든 브랜드의 시작은 초라하기 마련이고

성공한 브랜드에 대한 분석은 사후약방문이자

꿈보다 해몽인 경우가 태반이지 않던가.

그리고 모두들 그렇게 브랜드가 되어가지 않았던가.

마치 이 식빵 잘만드는 집 '밀도'처럼.


문제는 얼마나 이 집이 '지속가능하냐'의 여부일 것이다.

이 줄의 길이보다

이 빵을 향한 주인장의 고집이

'밀도'라는 어감처럼 부디 단단하기를.


p.s. 기왕이면 속은 촉촉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