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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첫 책을 냈다. 강연 의뢰와 인터뷰 요청이 잦아졌다. 그때 가장 큰 고민은 그거였다. 이발을 해야 하나? 뭘 입고 가지? 회사 다닐 때도 한 잡지사의 취재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회사 핑계를 대고 사양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사진 촬영에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인터뷰 요청이나 프로필 사진 요청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부담이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몇 장을 찍었다. 생전 처음으로 활짝 웃는 사진이 나왔다. 잘 아는 지인의 프로필 사진 때문에 사진 요청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사진 한 장의 소중함을 새삼 알게 됐다. 그래서 요즘도 나는 매일 셀카를 찍는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 나를 좀 더 사랑하기 위해, 내 실체를 마주할 방법 중 사진만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20만원 짜리 증명 사진을 찍는 한 사람이 있다. 사진관 이름은 '시현하다'이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 사진관엔 손님들이 북적인다. 사진관 주인의 인스타그램은 십만이 넘는 팔로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동네 사진관을 찾기 힘든 요즘에 사진관 주인은 증명사진만 찍는다. 그게 말이 돼하고 되묻다가 사이트와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고 이런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아, 나도 여기서 내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이곳은 상식을 깬다. 고정관념을 부순다. 그저 주민증이나 여권의 신분 조회를 위한 용도를 넘어선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직시할 수 있는 특별한 사진을 찍어준다. 방법은 배경 컬러와 조명이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개성이다. 이것이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시현하다'는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사진 가격은 매번 오르고, 프랜차이즈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이 시대에 증명사진을? 하는 사람은 올드한 사람이다. 형형색색의 배경에 담긴 일반인들의 사진은 생기가 있다. 개성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그걸 끄집어내어 사업으로까지 연결시킨, 그녀는 천재다. 이렇게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런 방식으로 만나다니.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한 사람의 개성을 '시현'하는 것이 그녀의 모토이자 슬로건이고 정체성이다. 그 일을 하는 그녀도 아름답다. 자신감 뿜뿜이다. 모두가 프로의 화려한 세계를 흠모할 때 그녀는 몇 평 되지 않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신만의 사진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만을 찍지 않는다. 인생을 옮긴다. 그곳을 찾는 10명 중 2명이 매일 울고 간다고 한다. 자신의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작업은, 그래서 오래된 동네 사진관의 증명사진과 또 다른 것이다. 눈썹이 없어도 아름답고, 다크써클을 지우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의 일생이, 개성이, 가치관이, 자존감이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사진가를 보았나.



솔직히 나는 내 사진이 싫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엔 많이 달라졌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됐다. 잘 생겨져서가 아니다. 화장빨을 받아서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 시작하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내가 나를 먼저 아끼기 시작하니 그것이 사진에 드러나 보였다. 때로는 과장된 그 모습이 내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 더 뻔뻔해졌다. 더욱 뻔뻔해지고 싶은 요즘이다. 필요하다면 투자도 할 생각이다. 물론 와이프에게도 비밀로 하고서 말이다.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진관은 앞으로도 잘 될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시대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다워지길' 원할 것이다. 그런데 나다워진다는 게 뭔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자신의 일로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우리는 누구나 그 생기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한 장의 증명 사진에도 오롯이 담길 수 있다. 그때가 바로 '시현하다'가 필요해지는 순간이다. 형형색색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 그것이 내가 진짜로 바라는 세상이다. 오늘 그 작은 세상을 우연히 발견했다. 살을 조금만 더 빼고 이 사진관을 찾을 생각이다. 내 모습을 직시할 생각이다. 내 모습을 시현해볼 생각이다. 그때까지 가격이 너무 오르지만 않기를. 이렇게 멋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사진출처

https://pikdo.net/p/sihyunhada/1853644049980789572_2271939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