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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2016년 11월 30일의 기록



오랫동안 소설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시간 낭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없는 시간 쪼개어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소장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간간히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읽었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게 아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실용적 책 읽기'의 기준에서 보면 두고두고 읽는다거나 밑줄을 긋는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소설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네이버 '오늘의 책'에서 최고의 덧글 수를 단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요즘 사람들은 어떤 소설에 열광하는가 싶어 간만에 소설책을 주문했는데 바로 그날 와이프가 이 책을 밤을 세워 읽어 버렸다. 그것도 극찬에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와이프와 나는 책을 고르는 기준이 매우 다르지만 나는 와이프의 책 고르는 수준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 읽기의 무력함'에 대해서 사무칠 정도로 어린 시절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간만에 제대로 마음 잡은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과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일까? 아니면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교감? 그도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감? 그러나 저자는 특이하고 '냄새' 즉 '후각'에 집착한다. 사람과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맡을 수 있는 그 한계가 너무도 명확한 미지의 영역을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든다.


소설의 줄거리는 눈물 날 만큼 간단하다. 후각에 대해서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으나 사람과의 진정한 교감을 가지지 못한 채 자라난 주인공이 무려 스물 다섯 명의 앳된 소녀들을 살해해서 궁극의 향수를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향수의 위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살인범으로 사형을 집행 당하는 광장에서 몇 천명의 인파들이 '절대 이 사람이 살인자일 리 없다'는 확신으로 전부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린다. 다시 말해 미쳐버리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토록 딸을 지키고자 했던 딸이 살해당한 소설 인물이 그를 보살피고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장면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보다는 이 소설을 쓴 사람의 배경에 더 관심이 갔다. 들리는 얘기로는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칩거생활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토록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이 단절된 세계를 묘사한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그는 향기로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 말도 옳다. 그러나 그 향기는 자신만이 느끼고 감탄하고 교감할 수 있는 세계였다. 주변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세계였기에 그가 가진 소통의 도구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향수'란 이름으로 사용되고 이용될 따름이었다.


이 소설이 소문대로 영화화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나올까. 나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잔혹하고 잔인하며 이기적인 존재이니까. 그러나 그렇다 해서 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놀랍고 새롭기는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서는 행복해질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차디찬 시멘트 바닥 위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있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새로움으로 인한 감탄 치고는 알듯 모를 듯 내 영혼이 상처받은 느낌이다. 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엄살 떨 생각은 없다. 그냥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것도 교감을 잃어버린 내 영혼만의 향기는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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