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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종종 들르는 단골 국숫집이 하나 있다. 비빔 국수가 특히 맛있다. 천연 재료로만 맛을 낸다는데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말없이 들러 기분을 내곤 한다. 국수 치곤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국수를 먹고 나오는데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해서 허둥대고 있는데 평소에 말이 없던 아저씨가 점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집 단골이니 나중에 받으라고. 평소에 눈인사만 하던 사이였는데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시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막역한 사이가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저씨와 나는 서먹하다. 그래도 마음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그 국숫집을 찾는다. 분명 맛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우노 다카시가 쓴 '장사의 신'을 읽었다. 재밌는 것은 백종원씨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맛이나 원가에 대한 얘기는 거의 쓰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시종 일관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손님을 즐겁게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우노 다카시는 잡지사의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렵게 여자친구를 데려갔는데 잡지에 나온 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힘이 빠질 것 같아서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대접할 때면 통째로 들고 가 서비스 한다고 한다. 같은 양이라도 그 순간 느낄 손님의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넓은 정문을 정원으로 만들고 굳이 좁은 쪽문을 입구로 쓰는 이유도 비슷했다. 그 편이 손님들에게 더 흥미로울 것이라는 오랜 고민의 결과였던 것이다.

 

문득 매일 쓰는 이 브런치 글이 얼마나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지 반성해보게 된다. 나는 정말로 글 쓰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가. 벌써 204일 째, 나는 매일 번호를 붙여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도 똑같은 장면이 하나 나와 깜짝 놀랐다. 수십 년째 쓰는 간장 같은 건 없지만, 378일 전통육수라고 표기해서 손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 쓰는 이 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200일 넘게 이 글을 쓰고 있다면, 그리고 천 일의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면 훨씬 더 읽는 사람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 한 가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우노 다카시가 초보 시절 아무리 해도 회를 예쁘게 썰어낼 수 없게 되자 메뉴명을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고 했다. '막 썰어 맛있는 회'... 이 메뉴는 초밥의 장인으로부터도 아이디어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나는 문득 최근에 쓴 세 줄의 글쓰기가 떠올라 웃음을 지었다. 글쓰기의 재료가 없어서 막 썰어 내놓은 글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오해는 마시길. 허접스레 쓴 이 글과 장사의 신을 비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와인을 잘 몰라도 와인 전문점을 냈다고 했다. 와인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은 할 수 없어도 스파클링 와인의 펑 하는 소리로 손님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는 열린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브랜드 이야기를 하지만 전문적인 MBA 과정을 한 번도 수료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각양각색의 가게와 제품의 이야기를 만나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고 신이 난다. 특히나 작은 가게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을 소개하는 일이 그렇게 흥미롭고 보람될 수 없다. 우노 다카시의 책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음식을 팔지 말고 즐거움을 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음식의 중요성을 이 책이 간과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음식의 최고를 지향하기보다는 손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 여긴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그렇게 장사의 신, 이자카야의 신이 될 수 있었다.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작은 작업에 내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는 써 본 사람만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200일을 넘게 글을 쓴다는 것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웃는다. 이 일이 정말 즐겁고 보람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의 다음 화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로운 글감과 이야깃거리를 찾는다. 그 마음으로 손님을 맞고 싶다. 맛있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의 신, 브랜드의 신이 될 수는 없을 지언정, 그 근처라도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마음이다. 맛깔나게 차려놓은 메뉴들로 손님을 기쁘게 하고 싶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어떤 도전이라도 해볼 것이다. 어떤 이유보다 그 작업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