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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의 이론과 실제

비버 박요철 2023. 1. 24. 08:12

어센트 코리아라는 회사에서 브랜드 네이밍을 요청해왔다. 이 회사는 구글과 네이버의 검색어를 분석해 소비자들의 숨은 의도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 그 결과 일을 의뢰한 회사는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와 욕구를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임신’라는 단어를 왜 검색하는지의 이유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러면 연령대별로 사람들이 임신을 검색하는 이유가 각각 다르다는 사실, 그래서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블로그 마케팅을 한다면 어떤 키워드로 글을 써야 하는지를 가이드해주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렇다면 이 회사의 차별화된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마음 속 숨은 욕망을 밝혀준다는데 있다. 나는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허블 망원경을 떠올렸다. 허블은 우주 망원경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지상이 아닌 우주에 망원경을 띄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기권에 있는 다양한 물질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 어떤 망원경보다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일종의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그 결과 최근에 발사된 제임스 웹을 제외한 어떤 망원경보다도 선명하고 깨끗한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연구는 허블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이 망원경의 역사적 의미는 대단했다. 그래서 나는 ’리스닝 마인드 허블‘이란 네이밍을 제안했다. 허블처럼 이 서비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압도적인 해상도의 사진(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병원 네이밍이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병원의 원장님이 새롭게 자신의 병원을 개원하면서 작업을 요청해왔다. 사실 요즘 병원 네이밍의 트렌드는 부르기 쉬운 이름이 유행이었다. 아마도 환자분들의 연령대를 고려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칫하면 격이 떨어져 보이는 위험도 배제할 순 없었다. 클라이언트의 니즈는 명확했다. 부르기 쉽되 이름에 품격이 있을 것, 쉬운 듯 어려운 제안이었다. 나는 이 척추관절 병원의 핵심 가치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핵심이 올곧은 허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곧은’을 소리나는대로 부른 ‘고든 병원’을 제안했다. 그리고 영어 이름인 ‘Gorden’을 중의적인 의미로 제안했다. 이 병원은 현재 ’서울고든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성업 중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이해하고 부르기 쉬우면서도 병원의 가치를 높이는 격조 있는 네이밍에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한 회사에서는 마스크의 네이밍을 요청해왔다. 일본에 수출하는 상대적으로 기능성과 편리함,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쓴 브랜드였다. 나는 ’습관‘에서 이 제품의 핵심 가치를 찾았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는 것처럼 마스크를 쓰는 습관이 이 제품이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표현한 약 100여 개의 네이밍을 제안했다. 그 중에서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받은 이름은 영어가 아닌 한글 네이밍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을 받고 있는 ‘청정일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1인 기업이 네이밍을 의뢰한 경우도 있었다.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던 회사 대표가 네이밍을 비롯한 전반적인 브랜딩 작업을 의뢰해왔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덴티넘 월간칫솔’이라는 새로운 네이밍을 완성해냈다. 중국에서 수입한 칫솔은 그 기능면에서는 차별점이 마땅치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손잡이 부분에 ‘월’ 표시가 있다는 점이 달랐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칫솔은 ‘제때 교체하는’ 칫솔이라는 핵심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씩 쓰는 칫솔을 실수를 최대한 막기 위한 일종의 ‘넛지‘ 장치인 셈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내가 알기로는 최소 30만 개의 칫솔이 팔려나갔다. 한때 네이버에서 칫솔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페친 중의 한 분이 네이밍에 대한 조언을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업에 하나의 성공 공식은 없었기 때문에 전화로 조언을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작업에 대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다 싶어 이 글을 쓴다. 사실 네이밍 하나가 제품이나 서비스, 회사의 성공을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회사의 차별화된 가치를 도출하는 치열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의 단어로 응축하는 작업이 네이밍이다. 이게 선명하면 제품의 카피, 스토리텔링, 나아가 상세 페이지 작업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나는 한동안 내 명함에 비버의 얼굴을 그려 넣어 왔었다. 그리고 ‘Brand Story Finde’란 이름으로 내 직업을 설명해 왔었다. 비버는 지구 최강의 건축가다. 비버가 강 하구에 집을 지으면 강의 유속이 느려져 인근 지역의 생태계가 좋아진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비버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브랜드를 찾아 이를 스토리로 소개하는 일, 이 과정을 통해 좋은 브랜드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닮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객을 끄덕이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해주곤 했다. 물론 지금은 ’브랜드워커‘란 이름으로 새로운 회사를 만든 상태다. 세상 사람 모두가 하나의 브랜드로 일하기를 바라는 바람을 담은 네이밍이다.

네이밍에 대한 조언을 요청한 대표님은 줄곧 ’네이밍이 뭐 그리 중요할까요?‘라고 말하면서도 몇 달째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매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이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리라. 나는 조그만 회사가 네이밍에 지나친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네이밍의 중요성을 간과한 이유도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위대한 개츠비‘의 원래 제목은 기억하기도 민망할 만큼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 하나로 이 소설은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네이밍은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부디 나의 짧은 조언이 그 대표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